
8월에 한국을 떠나기 한참 전부터 유럽 전역에 대저택을 소유한 부호라도 되는 양 친구들을 유럽으로 마구마구 초대했다.
유럽 여러 도시에서 고국의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그런 있는집자식 숭내를 내보고 싶어서 그랬다. 그 허영심은 곧 광기 어린 설득으로 변했고 많은 친구들을 못살게 굴었다. 나의 광기가 꼴도 보기 싫었는지 그냥 와버린 친구들이 있다. 그들 덕분에 있는집자식 숭내를 내볼 수 있었다. 9월 포르투갈에서 유선을, 10월 파리에서 민희와 서연과 혜연을, 12월 마드리드와 파리에서 다솜을, 그리고 파리와 런던에서 태형과 정민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2020년 1월과 2월 세비야와 마드리드에서 지영을 만났다.
이렇게 글로 늘여놓으면 있는집식솔 숭내내기에 성공했나 싶지만, 결과적으로 루트팍여행피해자모임의 회원만 늘리는 참극이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ㅠㅜ)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밤에 지영 자매와 조우했다. 원래는 다음 날 점심을 먹고 헤어진 다음에 마드리드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아침까지 참고 기다리기엔 같은 도시에 있다는 사실 자체로 너무 신나서 늦은 밤에 만났다. 2019년 8월 마드리드로 떠나기 전날 명동에서 만난 게 마지막이었으니 5개월 만이었다.
세비야가 너무 아름다운 덕에 대체로 만족스러운 일정이었지만 한 가지 충족하지 아쉬운 것이 있었다. 술을 와구와구 마시지 못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술을 왕창 마신 건 아마 1월 초에 런던에서였다. 그때가 친구들과 함께한 마지막 일정이었고 그 후로는 쭉 혼자 다녀서 술을 와구와구 마실 일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지영이가 짜잔! 하고 나타났다. 더구나 그는 다양한 만취 에피소드, 주사 에피소드를 함께 적립한 동지였기에 당장 술이 마시고 싶어서 잠옷을 입고 누워있다가 달려 나갔다. 찐으로 지영 자매가 있던 숙소까지 달려갔다.


잠옷에 그대로 외투만 걸치고 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풍기문란이자 미풍양속을 해치는 점이 되었다. 나의 행색을 발견하자마자 그는 나를 힐난하기 시작했다. '핫팬츠에 경량패딩 입은 사람을 친구로 둘 수 없다.', '술 한 방울도 같이 마시기 창피하다.' 등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지만 심성이 워낙 착한 친구라서 같이 술을 마시러 가줬다.
근데 열린 술집이 없어서 겨우 찾아 들어갔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처럼 오밤중에도 술집이 여는 것이 국룰인 줄 알고 만나자고 한 건데 어렵사리 술집을 찾아 들어가 머쓱했다. 들아가서 또 어렵사리 술을 시켰는데, 지영 자매가 스페인어를 잘한다고 마구 띄워줘서 신이 났다. 그런데 그건 내 핫팬츠를 욕하기 위한 밑밥이었다. 자매가 쌍으로 사진을 마구 찍어대며 문란한 옷차림을 나무랐는데 너무 웃겨서 맥주가 술술 들어갔다. 앉은자리에서 10잔이고 더 마시고 싶은데 문을 닫는다고 내쫓았다.

하는 수 없이 옆에 있는 DISCO BAR로 들어갔다. 앞에 기도형이 있어서 바짝 쫄아서 들어갔는데 디스코 음악과 앨범 커버들로 가득 찬 평범한 곳이어서 당황했다. 맥주 하나씩 시켜 신나게 마시는데 어떤 녀석이 우리에게 합장을 하며 인사했다. 우리는 셋인 데다가 술도 들어가서 감히 합장을 건넨 놈을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귀엽게 생기기까지 해서 붙들고 참교육을 해주기로 했다. 화가 일체 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일본인이 아니라며 혼쭐을 내고 사과를 받아냈다.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하는 것이 외모만큼이나 귀여웠다. 그리고 같이 셀카를 찍고 덩실댔다.
디스코바에서 더 들어간 술은 우리의 뇌를 고장냈고, 우린 더 많은 술을 갈구하게 됐다. 그래도 아직 연 곳이 있을 거라며 온갖 술집과 클럽을 검색했다. 그러다 미풍양속을 크게 해친 곳에 들어갔다.

세 번째 장소는 세비야의 한 게이클럽이다. 이곳에서 핫팬츠에 경량패딩 쯤은 아무것도 아닌 미풍양속 저해가 일어났다. 혹여 입뺀을 당할까 들어가기 전에 앞에 서있는 뽀이들에게 우리가 다같이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된다 길래 들어갔더니 핫뽀이들과 콜드할배들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여기서 술 두 잔을 마셨다.
애매하게 덩실대고 있던 와중에 사건이 일어났다. 마구 쏟아지는 양기에 정신을 못 차리고 소심하게 덩실대던 우리에게 어떤 덤블도어를 닮은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으나 이것저것 물었다. 우리는 친절한 유교걸스와 유교뽀이였으므로 착실하게 어르신께 대답을 드렸다.
어르신이 친절한 우리의 대답에 감동하셨는지 보답을 주셨다.

키쮸를 주셨다.
내가 이렇게 미풍양속을 크게 해치고 있는데 지영이는 신이 나서 마구 촬영했다. 친구가 저런 걸 당하면 구해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않나 싶어 아주 괘씸했다. 그래도 역시 웃음 앞에 장사 없다. 덤블도어에게 키스당한 기분을 나만 알게 된 것이 꽤나 원통했지만 너무 웃겨서 그런 걸 따질 시간이 없었다. 이곳 폐장 시간이 될 때까지 마구 덩실댔다.
아직까지도 덤블도어키스사건을 얘기만 나오면 깔깔거리면서 웃을 수 있는 거 보면 미풍양속 까짓 거 없어도 되나 싶다.


과음과 풍기문란으로 인해 다음 날 아팠다. 스타벅스에 누워 숙취에 아파하고 있는데 더 아픈 몰골로 지영 자매가 나타났다. 전날의 일을 복기하며 아주 맛없는 밥을 먹었다. 숙취로 비위가 약해진 와중에 맛없는 밥까지 먹어 더 아파졌는데 그것마저 너무 웃겼다. 미풍양속을 저해한 죗값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잘 웃고 잘 구경한 덕에 세비야에서 머무른 6일이 너무 좋게 남았다. 하나도 기대하지 않고 찾은 곳인데 아름다운 구석이 너무 많아서 좋았다. 지금은 잃어버렸지만 아주 좋은 텀블러도 싼값에 샀고, 이곳저곳에서 스페인어를 엄청 많이 썼다. 좋은 기억들로 가득 차있는, 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도시에 꼭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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