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박 3일 동안 파르나스 제주에 머물렀다. 원래 1박 2일 일정이었으나 날씨가 너무 좋아 1박 사리추가를 하여 2박이 됐다. 작년 11월에 방문했을 때보다 만족스러웠는데, 그 이유는 신관인 서관에서의 투숙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관과 동관에 각각 하루씩 묵었는데, 서관에서 묵은 하루가 파르나스의 진가를 내게 알려줬다.
그간 누군가 파르나스 제주에 대해 물으면 '수영을 재밌게 하고 싶으면' 가라고 전했다. 수영장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면 주변의 다른 호텔에 묵으라는 의도에서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서관에 투숙하면서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 호텔이 하루라도 더 낡기 전에 방문하셔라.

생일이 한 달이나 지난 시점이었지만 쨌든 생일을 기념해서 가는 것이기에 생일 기념으로 멋진 전망을 선물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정말이지 핵멋진 전망을 가진 방을 배정해 주셨다. 내가 묵은 서관의 프리미어 패밀리 트윈 객실은 왜가리 서식지와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살면서 왜가리를 한 번에 이렇게 많이 본 건 처음이었고, 그들이 사는 푸르르고 울창한 숲은 상쾌한 느낌 주었다. 파르나스가 위치한 곳이 바다 가장 가까이 숲의 한가운데라는 것을 까먹지 않을 수 있었다.

동관의 디럭스 객실이 뻥 뚫린 바다를 아무리 보여줘도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과는 달랐다. 동관의 객실은 면적이 작은 김에 어둡고 편안한 느낌을 주려 한 것 같은데 나는 왠지 기운이 빠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드넓은 바다가 수평선을 아무리 보여줘봤자 내가 있는 곳이 너무 좁고 어두워 즐길 맛이 나지 않았다. 아늑한 느낌을 주기엔 내부 인테리어도, 딱딱한 편인 매트리스도, 부족한 벽간 방음도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번 투숙 이후에 수영장이 아니면 방문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 거였다.


파르나스의 만족감을 극강으로 끌어올리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야외 수영장과 조식. 이 둘은 주변 어느 호텔과 비교해도 우위에 있다. 수영장 얘기를 먼저 하자면, 날이 맑을 때 이곳 선베드에 누워있으면 천국이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멍하니 누워있으면 귀신 씐 사람처럼 '무릉도원이세요?'를 계속 말하게 된다. 2박을 하기로 결정한 것도 여기 누워있을 때였다. 이곳에 하루만 더 누워있을 수 있다면 돈 30만 원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카드값을 보고 30만원은 아무렴 '존나 30만 원'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여한은 없다. 제주에서 온종일 맑고 따뜻한 날은 참으로 귀하다. 그 귀한 것을 만끽하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파르나스의 조식은 생각만으로 웃음이 난다. 아침부터 다양한 구색이 있고, 그것들이 모두 제대로다. 특히 과채주스 코너는 맛에 재미까지 더한 곳인데, 눈앞에 있는 채소나 과일 중 원하는 것을 말하면 그 자리에서 착즙이 시작된다. 매일 아침 '샐러리랑 케일이랑 사과랑 레몬이요!' 하고 싶다. 그랜드 조선 아리아의 조식도, 제주신라 더파크뷰의 조식도 개맛있지만 이 재미는 여기에만 있다.
중식은 더욱 대단하다. 이튿날엔 조식을 중식으로 변경해서 먹었다. 아침에서 조금의 변주만 주는 건가 했지만 아주 다른 메뉴가 있었고, 아침처럼 하나하나 아주 훌륭한 맛이었다. 첫날 저녁에 롯데호텔에서 먹은 디너보다도 훨씬 뛰어나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롯데호텔에 들러 환불을 받고 싶은 심경이 됐다. 이날 먹은 마라 도가니 어쩌구의 맛이 자꾸만 떠올라서 미치겠습니dollar........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얘기를 계속했지만, 어쨌든 결론은 '이 호텔이 더 낡기 전에 방문하셔라'다. 벌써부터 신관의 철재 난간을 따라 페인트에 녹물이 흘러내리고 있고, 수영장 타일이 낡아가고 있다. 제주에 방문할 날을 정했다면 맑은 날 하루를 골라 묵어보시길. 꼭 신관인 서관에 있는 객실로, 바다가 보이든 말든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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