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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사미/하루의 면면

지옥문 앞에서 열린 사치스러운 페스티벌 - 서울 신라호텔, 롯데호텔 서울 라세느

by 루트팍 2023. 1. 18.
서울 신라호텔 비즈니스 디럭스룸

 
12월은 혹독했다. 오한에 시달리며 3주 동안 오한에 시달리며 출근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앓아누웠다. 아픈 와중에 서울에 다녀오는 기이한 행보를 택했다. 아픈 와중에 제주와 서울을 오간 덕에 몸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한참을 더 아파야만 했다. 오랜 친구들의 결혼과 생일을 한꺼번에 축하해야 했기에 나의 아픔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2박 3일 동안 요양보호사 두 명을 고용해 고통스러운 호사를 누린 것이 되어버렸다. 한 번 밥을 먹으러 갔던 서울 신라호텔에 묵으러 가봤다. 나의 생일에, 생일이 아니어도 매번 만날 때마다 과한 대접을 해주는 다솜에게 더 과한 대접을 하고 싶었다. 월급을 받는 사람이 되고서 처음 맞이하는 그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과하게 화려하게 꾸미고 싶어서 서울 신라호텔을 택했다.
 

다솜을 위한 꽃 케익. 개비싸고 개맛있다

 
한 달 전부터 페스트리부티크에 수차례 전화를 해 케이크를 예약하고, 호텔에 그의 생일을 알리고 난리부르스를 떨었다. 온갖 난리를 치고 기대한 순간이었는데, 내가 체크인을 하고서 할 수 있던 건 오직 누워있는 일뿐이었다. 몸이 너무 아파 침대에 누워 다솜을 기다렸다. 축하를 받기 위해 온 다솜은 호텔에 들어서면서 느자구없이 요양보호사가 되었고, 해열제와 감기약을 사다 나르며 나를 열심히 간호해 주었다. 
 

파크뷰 창가에 앉으면 보이는 곳, 항상 여기가 무슨 용도인지 궁금하다. 아시는 분?

 
 
룸서비스로 시킨 갈비반상과 팟타이도 맛있게 먹고, 타코야끼와 아이스크림도 시켜 맛있게 먹었는데 즐거움은 잠시일 뿐이었다. 몸이 계속 아파서 냅다 누웠다. 아마도 내가 그 날 가장 많이 한 말은 "다솜아, 나 아파"였을 것 같다. 호텔 측에 부탁한 생일 축하 카드도 누운 채로 전달할 수밖에 없었고, 호텔에 있는 내내 열 때문에 시뻘게진 얼굴을 하고 힘겹게 축하를 전했다. 축하를 받으러 왔다가 걱정만 한아름 안고 가게 된 다솜에게 다시 한번 사과를 전한다.
 

 
다음 날은 민지누나의 결혼식이었고, 열이 올라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축하를 하고 얼른 빠져나왔다. 코로나 검사를 여러 번 하고서 갔는데도 내가 혹시 코로나 전파자였으면 어떡하나 심히 걱정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 갔어야 맞는 것 같는데 그땐 아파서 정신이 흐렸나 보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지원이를 만나 함께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픈 와중에 캐리어를 끌고 강남에 번쩍 강북에 번쩍 했는데, 왜 더 아파졌는지 이제야 잘 알 것 같다.
 

롯데호텔 서울 라세느 디너, 최근 간 뷔페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다

 
눈앞에 저승사자가 아른거리는데도 사치는 멈추지 않았다.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온 김에 최대한 많은 친구들을 만나야 한다는 욕심에 한참 지난 유선의 생일까지 축하하게 됐다. 라세느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저녁을 먹는 김에 호캉스도 함께 즐기기로 했다. 지옥문 앞에서 열린 페스티벌이었다. 롯데호텔에서 까지 묵기엔 부담스러워 몬드리안에 묵었다. 온갖 과한 소비를 하다 보니 몬드리안쯤은 마치 사치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어이가 X.
 
라세느 밥은 정말 맛있었다. 18만원이나 하는 밥값을 생각하면 당연하지 싶다가도 엄청 맛있어서 감사할 정도였다. 아픈 몸을 끌고 가서 식욕은 매우 부진했고 덕분에 아주 부자인 것처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웬만한 음식은 모두 한 입만 먹을 수 있었다. "오, 맛있다!" 하고서 포크를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아주 자명한 사실을 새삼스레 깨우치게 됐다. 부자여도 아프면 다 소용없겠구나. 고통은 즐거움을 아주 쉽게 이겨내서, 맛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얼른 눕고 싶었다.
 
 

지옥문 페스티벌에 신이 잔뜩 난 모습

 
흡족하게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해열제를 때려먹고 소공로를 걸었다. 신세계백화점의 불빛을 구경하다가 사단이 나고 말았다. 열이 계속 오르고 저승사자 선생님이 내게 팔짱을 낀 것만 같아 당장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가 몬드리안까지의 그 짧은 거리를 달리는 동안 죽음에 대해 깊게 고찰할 수 있었다. 호텔방에 들어오자마자 두 번째 요양보호사 유선이 수건을 적셔 돌봐주기 시작했다. 원래 계획은 와인잔을 채워 목을 적시는 거였지만 지옥 문지방을 밟은 상태에서 그럴 순 없었다. 분명히 유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날이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몬드리안 조식당 천장

 
유선도 나도 어이가 계속해서 없어서 쉬지 않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체크아웃을 하고서 핵맛있는 보쌈도 먹고 헤어졌다. 그리도 아팠는데 2박 3일 동안 정말 많은 일을 했다. 그러고서 2주를 더 아팠던 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다솜, 민지, 유선 모두를 진심으로 축하했고 지금도 축하한다. 지옥문 페스티벌의 세 부스 모두 정말 성대했다. 그리고 이젠 아프지 않으니 참 좋다. 이제 열심히 일해서 할부를 갚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