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솜이와 롯데호텔 서울, 그중에서도 이그제큐티브 타워에 투숙하고 왔다.
다솜이가 내 생일을 맞이하여 신라호텔 객실과 파크뷰까지 한꺼번에 예약하는 급발진을 하길래 뜯어말려야 했다. 말리고 말려서 방문하게 된 곳이 롯데호텔이다. 병원 진료와 검사를 통해 충동성 상위 1%로 인정받은 나도 다솜 앞에서는 충동 찐따가 된다. 덕분에 매번 황송한 대접을 받으니 아무렴 좋기도 하다. 나름 다운그레이드 한다고 한 선택인데 아주 만족스러운 투숙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70만 원 쓸 걸 50만 원 쓰는 정도로 바꿨을 뿐이다. 이미 졸라 큰돈이다. 이 정도로 다솜이의 급발진이 일류다.
이 호텔은 객실이 정말정말정말 좋다. 오래된 5성급 호텔만 가보다가 나름 새 거인 호텔에 오니 아주 감동적이었다. 특히 욕실이 넓진 않지만 효율적이고 세심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멋들어지게 꾸며져 있어서 좋았다. 다만 몸을 트지 않은 다솜과 내 사이에 욕실 유리를 가릴 것이 나무 블라인드뿐이라는 점이 아찔했다. 아찔한 상황이면 서로 창밖의 하나은행 건물을 바라봤다. 항상 올려다보던 하나은행을 목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바라볼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을지로에 위치한 하나은행 빌딩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빌딩이다. 온통 각진 모양인 근처 빌딩들 사이에서 둥근 곡면을 가진 몇 안 되는 빌딩이다. 둥근 모양의 고층 빌딩은 멋있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좋다. 스낵랩 같기도 하고 덮어놓은 수첩 같기도 하다. 스무살 때만 해도 한창 짓고 있던 이 빌딩이 어느새 을지로 입구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이 되어있다. 올려다봐도 좋지만 높이 올라와 상단부를 자세히 관찰하니 더 좋았다.
다솜이가 도착하고 곧바로 애프터눈티 타임이라서 라운지 르살롱으로 갔다. 르살롱이 원래 이런 건지 아니면 내가 간 날만 그랬던 건지 아주 한산했다. 우리를 제외한 여러 손님들이 창가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자 더는 사람들이 방문하지 않았다. 평화롭게 차와 다과를 즐길 수 있었다. 빌딩 숲과 북악산을 바라보며 너무 평화롭고 쾌적하다고 난리법석을 하며 차를 마셨다. 상단 트레이의 베이커리가 놀라울 정도로 맛이 없던 것만 빼면 아주 완벽한 티타임이었다.
차를 마시고 빵을 먹고 나서는 각자 시간을 가졌다. 다솜이는 나무 발을 시원하게 올리고 바깥을 바라보며 반신욕을 하고, 나는 수영장과 헬스장에 다녀왔다. 롯데호텔 서울은 피트니스 센터를 회원권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편의시설이 아주 꼼꼼하게 갖춰져 있다. 다만 너른 사우나와 헬스장에 비해 수영장의 규모는 매우 작다. 바로 전 주에 다녀온 JW 메리어트 동대문의 으리으리한 수영장 때문인지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치만 천장에 창이 나있어 바깥을 보며 배영을 하기에 아주 좋았다. 배영을 조금 하다가 헬스장에 갔다. 특별히 어떤 운동을 열심히 한 건 아닌데 이것저것 둘러보는 재미가 있는 헬스장이었다. 운동복부터 운동화까지 모조리 대여가 가능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가기 좋은 곳이다.
각자 할 일을 마치고서 바로 해피아워를 즐기러 내려갔다. 롯데호텔 르살롱의 해피아워는 지금까지 가본 모든 라운지를 통틀어 최고였다. 맛있는 음식이 많고 즉석으로 파스타도 만들어주기까지 하고, 무엇보다 모든 라운지 직원분들이 엄청나게 적극적인 응대를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샴페인과 샤도네이가 너무너무 맛있었고 쉐이커로 잔뜩 흔들어서 내어주는 칵테일도 맛있었다.
술도 밥도 과일도 너무 전투적으로 먹다가 탈이 났다. 턱끝까지 음식물이 차올라 너무 괴로워 산책을 했다. 시청 광장을 빙 둘러 산책을 하고도 소화가 일절 되지 않아 소화제를 사먹었다. 뷔페 다녀와서 소화제 찾는 버릇 언제 고칠 수 있는지..... 참........
객실로 돌아와 '어쩌다 사장 2'를 시청했다. 소화제를 먹은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조인성이 끓여주는 대게라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다.
지난주에는 새벽 6시에 'A Whole New World'를 재생해 현호를 마구 깨워 수영장으로 데려갔고, 이번 주에는 오전 7시에 일어나자마자 고성을 마구 질러 다솜이를 라운지로 인도했다.
지난밤 해피아워에서 느낀 감동은 조식에서까지 이어졌다. 추가금을 내고 라세느에서 조식을 먹을까도 고민했는데 안 그러길 참 잘했다. 아주 고요하게 아름다운 빌딩 풍경을 보며 아침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주 비싼 값을 지불했지만 이만하면 이 호텔은 내게 소임을 다했다고 느껴졌다. 다음 주면 메인 타워에서 투숙하는데 괜히 이그제큐티브 타워와 비교하며 실망하게 되진 않을까 미리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다솜이가 먼저 일을 하러 떠났고, 나는 혼자 객실에 남아 반신욕도 하고 잠도 더 잤다. 침대가 좁은 게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침구가 아주 포근하게 세팅되어 있어서 짧지만 질 좋은 수면을 할 수 있었다. 전날 레이트 체크아웃을 미리 요쳥해둬 1시가 조금 넘어서까지 호텔에 있다가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생일 좋다. 이런 황송한 경험도 하고. 다솜이 생일엔 어떻게 앙갚음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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