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기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함께 안 가본 도시들을 가보자는 취지로 지난여름엔 담양을 다녀왔고, 이번엔 목포다. 나는 열여덟 살에 고등학교 친구 이현희와 내일로 여행을 하며 가본 적이 있는 도시다. 지금은 물론이고 그 당시에도 그렇게 친밀하지 않던 현희와 몇 날 며칠 여행을 다닌 것이 정말 신기하다. 그때 함께 나주에서 목포로 가 갓바위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현희야 잘 지내니?
목포 여행 일정은 짧지만 아주 행복했다. 지난여름 담양에서처럼. 운이 좋게 그곳에 있는 내내 날씨는 아주 맑았고, 멀리 있는 아름다운 것들까지 훤히 볼 수 있었다. 우리 모두가 경박스러운 감탄사를 남발하며 여러 풍경들을 극찬했다. 십 년도 더 전에 왔을 땐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 와서 춥고 시시하단 생각만 했다. 너무나도 다른 감흥을 가졌으니 처음 목포에 가봤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미리 빌려둔 렌터카를 타고 곧바로 식당으로 갔다. 문을 열기 전부터 길게 줄이 늘어선 식당이었다. 대기를 접수하고 기다렸다가 먹을 수 있었다. 날 고기를 먹지 않지만 소풍족 누나들이 너무 맛있게 먹어서 먹어보고 싶었다. 근처 카페에서 동그랗게 앉아 수다를 떨다가 차례가 돼서 들어갔다. 식당 아주머니께서 준치 회무침도 같이 시켜서 비벼먹으면 맛있을 거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정말 맛있었다. 촘촘한 김에 싸 먹으니 더욱 맛있었다. 평소에 먹던 음식이 아니라 많이 먹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오랜만에 비만인스럽지 않은 식사를 했다. 다른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이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고서 슬슬 걸어서 역사문화관에 갔다. 외벽이 공사 중이라 외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게 아쉬웠다. 건물 내부를 속속 들여다보니 아쉬움은 금세 사라졌다. 서울에서는 흔하지 않은 근대 건물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적극적으로 관람 안내를 해주시는 직원 분들도 계셔서 심심할 틈이 없는 공간이었다. 조경수도 아주 근사해서 그 아래 벤치에 앉아있는 두 형들을 주인공으로 BL서사까지 하나 뚝딱 만들어냈다. (죄송해요. 나무가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어떡해요ㅜㅠ)
근대역사관을 2관까지 관람하고 갓바위를 보러 갔다. 바닷가를 따라 갓바위까지 주욱 늘어진 산책로가 있었다. 낮은 높이 때문에 바다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날이 아주 맑고 바다는 잔잔한데 해는 기울어있었다. 에메랄드 빛 바다 위로 윤슬이 넓게 흩뿌린 풍경이 마음을 차분하고도 풍족하게 해주었다. 반짝이는 퍼런 바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다.
아름다운 것이 마음을 너무 차분하게 해준 건지 차분하게 누워있고 싶어졌다. 내 텐션이 바닥인 것을 확인한 여러 친구들이 상태를 물어주었고 숙소에 가자고 해주었다. 30분 동안 숙소 바닥에 다 같이 누워 떠들었다. 누군가는 졸기도 했던 것 같다. 너무 깨끗하게 청소된 숙소여서 모두가 거리낌 없이 바닥에 몸을 붙이고 있을 수 있었다. 노곤하고, 동시에 너무나 편안해서 바닥에 누워있는 행위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 아마 우리가 함께 있던 1박 2일 동안 가장 조용했던 순간이었을 거다.
누워서 재충전을 하고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육지와 섬을 아주 높은 곳에서 오가는 목포 해상 케이블카는, 이번 여행 중 가장 짜릿한 기억을 선물해줬다. 목포대교를 달리며 본 풍경, 봄의 해 질 녘 공기가 마음을 아주 들뜨게 했다. 그래서 바닥이 유리로 되어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케이블카에서는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롤러코스터를 태워준데도 이걸 탄 경험과는 바꾸지 않겠다. 바다 위를 높게 지날 때 포효에 가까운 탄성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그걸 보던 소윤이는 손에 땀을 잔뜩 흘리며 나와 더이상 여행을 진행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럼에도 난리법석을 계속 피우니 결국에 소윤이도 적응했다. 다들 이리저리 카메라를 들이밀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짧은 일몰을 감상하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점점 밝아지는 달이 있었다. 아주 커다랗고 밝고 선명했다. 은콩 브이로그 저리가라 므야? 무야? 하며 호들갑을 뜰 수밖에 없었다. 일몰에 만월까지 너무나도 찬란해 슬퍼질 지경이었다. 친구들과 좋다고 좋다고 염불을 외며 감상하니 더 그랬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함께 앉아있는 친구들이 소중해지고 이 세상도 소중해지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이 행복한 세상이 언젠가 오길 바란다는 바람을 가졌다. 아주 과한 상상도 허락하는 목포 해상 케이블카. 다시 타고 싶다.
케이블카로 왕복을 하고 나서 차로 되돌아가는데 소윤이가 저녁 급식을 먹고 나오던 때가 떠오른다고 했다. 너무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했고 살면서 그리워한 적이 없던 그 시절을 처음으로 애틋하게 떠올려보았다. 싫다고 몸서리를 치던 그 시절에도 아름다운 풍경이 함께했다고 생각하니 괜한 위로가 되었다. 이런 감상이 오래도록 지속되면 좋았으련만, 커다란 달과 원죄가 많은 대원이를 발견하니 너무나도 조롱이 하고 싶어졌다. '늑대원'이라는 닉네임을 새롭게 만들어주고 5대 1로 조롱 다구리를 깠다.
으슬으슬 떨면서도 우리가 방금까지 아주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다고 이야기하며 아귀찜을 먹으러 갔다. 포미아구찜이라는 곳이었는데 내가 살면서 먹어온 모든 아귀찜이 부정당하는 맛이었다. 어김없이 내 안의 은콩이 등장해 므야? 무야? 므아? 거리면서 존맛 아귀찜을 흡입했다. 진짜 너무나도 맛있는 음식이었다. 이걸 왜 서른 살이 다 되도록 못 먹어본 건지 억울해서 화가 났다. 다음 날 아침까지 그 음식이 안긴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내가 천국에 가면 저녁마다 저것을 먹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와인, 케익, 커피, 과자를 샀다. 씻고 나서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번 여행의 소회를 밝히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포복절도했다. 특히 얼마 전 크라임씬을 함께한 현호와 효연이의 상황 재연에 눈물을 쏟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봐줬으면 좋겠어서 업로드해도 되냐고 물었는데 죽여도 되냐고 되물어서 포기했다. 연기 선생님이 된 현호의 뼈를 깎는 연기 코칭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토요일에 촬영한 그것을 매일매일 돌려보고 있는 중이다.
다음 날 호캉스 일정이 잡혀있어 친구들보다 먼저 목포를 떠나야 했다. 아침에 가장 먼저 씻고 거실로 나와 혼자 빵을 우걱거리는데 목포에서 본 것들, 먹은 것들 모두 발을 붙잡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환상적으로 깨끗해서 묵는 내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 숙소까지. 목포에서의 모든 것들이 감사해서 그 마음을 어딘가에 마구 쏟아내고 싶었다. 그 대상으로 숙소 사장님으로 정하고 편지를 써내렸다. 하트를 남발하며 러브레터에 가까운 글을 완성했다.
목포역에서 헤어져 올라오는 내내 너무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너무나도 고유하다는 생각에 슬프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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