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극인이자 작가인 박상영의 첫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읽었다. 태어나서 읽은 소설 중 가장 크게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은 소설이다. 삼일에 걸쳐 환호를 하고, 한숨을 쉬고, 내 몸 여기저기를 치며 읽었다. 처음엔 스무 페이지에 한 번씩 쉬다가 나중엔 세 페이지에 한 번씩 쉬어가야 했다. 마음이 너무나도 크게 동해서 내 머릿속 어딘가가 크게 고장 났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도윤도를 구속 수감시켜야 한다고 K형에게 강하게 주장했다. 그도 크게 동감했다. 아마 책을 다 읽은 독자들 모두가 도윤도를 체포하러 가는 데에 동참할 것 같기도 하다. 도윤도는 존나 유죄다. 아주 여러모로. 도윤도를 낳은 박상영 선생님께도 조금의 잘못을 떠넘기고 싶다. 이렇게까지 사람을 힘들게 하실 필요가 있었나요? 물론 덕분에 삼일 동안 행복했지만 죄가 상당하십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면서는, 고이는 침이 위산이라도 되는 양 힘겹게 삼켰다. 아픈 장면들이 잔뜩인 인물들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어딘가에 안전하게 고여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기꺼이 화자가 된 마음으로 읽어서 그런지 윤도만큼은 그 어디에도 고여있다고 느낄 수 없었다. 급발진을 자꾸 하게 되는데..... 왜 화자에게 이름을 주지 않아서.......... 나의 일처럼 만드셨는지요.... 박상영 선생님......? 윤도는 그렇다 쳐도 태리는요........? 왜 저에게 태리까지 겪도록 하시는지요..............
나에게도 1차원이 되었다고 굳게 믿던 날들이 있다. 아마도 찰나였을 그것을 늘이고 늘여 온종일로 만들었겠지. 이어져 선이었을 찰나를 누구의 의사와도 상관없이 늘여서 면으로 도형으로 만들었던 시절이었다. 누구보다 2차원이고 3차원이었지만 1차원이라고 굳게 믿던 그 마음이 너무 창피하고 아프고 웃기다.

@그렇다면 나의 윤도에게
나는 화자처럼 윤도의 방이 보이는 집에 살지 않아서 아주 애타게 너희 집 앞을 오래 걸었다. 약속이 마치고 집으로 갈 때면 수 십 분을 그 주변을 걸었는데도 너는 없었다. 그러길 몇 주이다가 갑자기 마주친 어느 날에 아주 놀란 채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걷잡을 수도 없이 열이 올랐지. 너는 왜 이렇게 얼굴이 빨갛냐고 물었고, 나는 아주 오래 생각하다가 "추워서"라고 딱 세 음절을 말했다.
내린 눈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라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그게 아마도 너와의 마지막이었고 너는 아직도 나의 낡지 않은 기억 속에 산다. 소설 속 화자와 윤도가 가졌던 서사의 반의 반의 반의 반의 반만큼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너는 내게 윤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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