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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사미/우발적 글쓰기

며칠 간 마주친 아름다운 것들

by 루트팍 2021. 4. 15.

 

 

  봄이라 아름다운 것들과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이 계절에만 볼 수 있는 꽃들이 잔뜩이다. 좋은 향이 나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면 지척에 꽃이 있다. 꽃을 골똘히 볼 수 있도록 날씨가 도와준다. 잔잔하게 선선한 바람이 분다. 볕을 충분히 받을 수 있게 하늘이 맑다. 거기에 신난 개들과 나른한 고양이들도 꽃들 옆에서 귀여운 풍경이 되어준다.

이촌역 어느 출구 앞 어느 나무

 

 

  지척도 지척이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잔뜩 몰아서 보려면 풀과 나무가 가득인 곳에 가야 한다. 며칠 간 그런 곳 두 곳에 다녀왔다. 지난 일요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오늘은 덕수궁에 다녀왔다. 각각의 장소에서 본 것들이 너무 아름다워 마음에 크게 일렁였다. 그래서 꼭 글로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거울못

 

 

  국립중앙박물관은 내 생일 잔치 일정 중 하나였다. 해방촌에서 먹으려던 점심을 경리단길에서 해치우고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갔다. 대학교 1학년 때 가보고서 처음 가보는 거였다. 시간이 촉박해 1층의 절반 정도만 제대로 보았다. 건물도 전시도 매우 멋졌다. 특히 영상관 1에서 상영한 영상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전시관의 세 면과 바닥에 영상이 상영되는데, 너무나도 화려하고 정교한 영상에 넋을 놓고 봤다. 내가 본 건 수요일과 일요일에 상영하는 '신선들의 잔치'였고 다른 요일에 상영하는 것들도 꼭 보러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복사꽃과 수선화

 

 

  전시장에서 나와서 박물관 앞마당을 산책했다. 복숭아나무 꽃과 수선화, 조팝나무, 병아리꽃나무 등등. 원래 이름을 알던 꽃부터 처음 보는 꽃까지 모두모두 반갑고 귀여웠다. 자꾸 "기유~"하면서 사진을 찍으니까 다솜이가 째려봤다. 진짜 귀여워 미치겠어서 터져 나오는 방언 같은 거였는데 다솜이의 성미를 건드린 것 같았다. 다솜이가 눈총을 잠시 주긴 했지만, 우리 둘 다 줄곧 신이 나서 꽃이며 나무며 이름을 부르며 돌아다녔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아기 맹수

 

 

  주말인데도 박물관 폐장 시간이 지나서인지 사람이 앞마당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리처럼 꽃과 나무를 감상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들 몇과 벤치에 앉아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 몇이 있었다. 너무나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이 날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기억할 아주 아름다운 날들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오늘 다녀온 덕수궁은 며칠 간의 다짐 끝에 다녀온 곳이다. 월요일부터 학원을 마치면 덕수궁에 가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등원했다. 하지만 마칠 시간이 되면 모든 생각이 소거되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마침 오늘은 학원이 끝마칠 시간에 이 내 머릿속 지우개 사태를 친구들에게 설명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덕수궁 생각이 남게 됐고 곧바로 그곳으로 갔다. 종로 3가에서 따릉이를 타고 가니 금방이었다.

 

 

석조전과....그 옆......어떤 건물

 

 

  지난 번에 창덕궁에 들어갔던 것처럼 카드를 꽂아 자동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몇 걸음 걷다가 불현듯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덕수궁 내부에 들어와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덕수궁 둘레길을 수도 없이 걸은 탓에 내가 안에도 들어가 본 적이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다른 궁들에 비해 비교적 규모도 작고 최근까지 지어진 건물이 많아 생경했다.

 

 

말로만 듣던 정관헌

 

 

  아름다운 건물들이 커다란 나무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은은한 조명까지 건물마다 켜져 아름다움을 더했다. 멀리 높은 빌딩들과 눈앞 궁궐의 풍경이 각자 그리고 함께 빛나고 있는 모습이 좋았다. 내가 저벅저벅 거는 소리와 사람들의 조용한 말소리가 섞여 들렸다. 여기저기에 핀 꽃 냄새도 공기에 가득했다. 왠지 모르게  평온하고 또 충만한 마음이 들었다.

 

 

 

 

  눈도 귀도 코도 즐거운 순간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 조금 났다. 눈물을 훔쳐내곤 친구들에게 이곳이 너무 아름답다고 와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마도 내가 오늘 덕수궁에서 느낀 것들은 봄의 덕수궁의 고유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이 핑계 저 핑계로 조만간 자주 찾아와야겠다.

 

 

 

 

  며칠 간 내가 마주친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 중 아주 작은 부분을 내보였다. 이번 봄은 간직할 것도 내보일 것도 많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