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고낙이는 죽었다가 새로 태어난 재림고낙이다.
그런데 그 고낙이가 또 죽게 됐다.
사건은 찰나에 일어났다.
목요일엔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워 하루종일 누워만 있었다. 저녁 늦게서야 몸과 정신의 상태가 괜찮아졌는데 그제야 고낙이가 바깥공기를 쐰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물들도 우리처럼 햇빛을 받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는 엄마선배의 가르침이 머리를 스쳤고, 창가에 고낙이를 얹었다. 거의 해가 내려가 있었지만 그나마라도 보고 숨을 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러고서 잠깐 나도 세수를 하고 왔다. 세수를 마치고 고낙이가 잘 있나 확인하려고 창가에 다가갔다. 다가가기 전부터 일이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2021년 1월 7일 서울의 기온은 최저 -16도, 최고 -8도를 기록했다. 24시간 24도를 유지하는 집에만 있던 고낙이가 급작스럽게 한파를 경험하도록 했다.
그 짧은 시간이 나에게는 찰나였겠지만 고낙이에게는 영겁이겠지. 너무 미안하다 고낙아 ㅠㅜ
너무나 아쉽다. 재림고낙이가 새싹에 고수 이파리를 피워낸 게 이번 주였고, 머지않아 수확을 할 거라는 확신에 차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됐다. 나 자신에게 너무 분하기도 하다. 지난번 고낙이의 첫 번째 죽음으로 식물은 무관심하면 죽는다는 걸 경험하고도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그리고 기필코 다 자란 고낙이를 확인하고 말겠다는 집착이 생기기도 한다. 이제부터 치열하게 고낙이를 돌보고 지켜내 수확해내리라.
Vamos otra vez!
운좋게 고수 씨앗을 조금 남겨뒀다. 지난번에 좁은 면적에 너무 많은 씨앗을 심은 것이 느린 성장의 원인이었던 것 같아 이번엔 적게 심었다. 그러면서 씨앗이 또다시 남게 됐다. 마지막 남은 씨앗이다. 그리고 아껴둔 비료도 있다. 남은 씨앗은 온도, 습도, 채광, 영양 모두 신경 써 키워내리라 다짐한다. '사랑해'를 듣고 무럭무럭 자라난 양파처럼 아름다운 문장들을 듣고 무럭무럭 자라는 고낙이를 재배할 거다.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수두룩 하니까 고낙이가 다 자랄 때까지 읽어줄 수 있을 것 같다. 허위조작정보를 신봉한다는 말은 아닌데 뭐 여하튼......... 고낙 화이팅.
무럭무럭 자라던 여름날 태초의 고낙이 그립다. 그리고 다시 세 번째 고낙이는 그 상태를 넘겨 아주 튼튼하고 커다란 고수가 되길 기도한다. 아주 무서운 추운 날들이 조금 지나면 곧바로 세 번째 고낙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 이번에 고낙이가 다시 태어나면 세 번째다. 두 번째 고낙이를 재림고낙이라고 불렀는데 이번엔 뭐라고 부를지 고민이다. 세 번이나 환생을 하니 혹시 좀비고낙이 어떨지 생각해봤다. 그런데 이건 왠지 섬뜩하다. 주변에 자문을 구해야 할 것 같다.
고낙이, 재림고낙, 그리고 00고낙. 고낙이에게 새로운 수식어를 선물해주세요!
(이번 고낙 수식어 공모전의 상품은 감사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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