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새벽 다섯 시인데 잠이 일절 오지 않는다.
원래 정근이와 이곳에서 편안하게 잠도 많이 자고 책도 많이 읽고, 뭐 암튼 온갖 편한 것들을 많이많이 하기로 했는데,
가장 중요한 잠부터 조졌다.

지금 신라스테이 구로점에 있다. 오후 세 시에 체크인을 하고서 씻고 아주 잠깐 자고 산책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치킨도 먹었다. 맥주도 세 캔 마셨다. 그동안 정근이의 옷차림도 바꼈고 방도 많이 어질러졌는데, 줄곧 정근이 뒷모습을 뜬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오전 세 시경에 잠을 청하려 불을 끄고 누워도 봤지만 실패했다. 한 시간 동안 뒤척인 후 여전히 잠이 오지 않는다는 걸 서로 확인하고 티비를 켰다. 구정근만 재밌는, 그리고 지겨운 인터뷰 영상을 한 시간 동안 보고도 실패했다.
정말 미스테리인 점은 나는 어제 안 잤다. 정확히 말하자면 엊그제부터 안 잤다. 호텔에 도착해 깜빡 잠든 한 시간을 제외하면 엊그제 오후 네 시부터 깨어있다. 해야 할 일이 산중인 학기 중에나, 아무 할 일 없는 방학에나 잠은 쏟아져내렸다. 그런데 하필 오늘만 잠이 안 온다. 커피 때문인가 싶다가도, 오후 네 시에 일어나 커피를 때려마시고 잘만 잤던 최근 며칠을 생각하면 그게 아니다. 강력한 용의물(?)로 하겐다즈 녹차 아이스크림을 올렸다. 오후 9시 경 우리는 하겐다즈 파인트 아이스크림을 사이좋게 급하게 나눠먹었다. 냉동고가 따로 없는 호텔 냉장고를 모르고 샀다가 더 녹기 전에 후딱 해치웠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어제 오후 4시부터 고작 1시간을 잤는데 이렇게 졸리지 않을 수가 있을까? 원래 이 정도 양의 커피와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도통 잘 수 없는 것이 맞다는 의학적 소견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고 싶다.

내일, 아니 곧 다가올 오전 7시가 되면 조깅을 하고 조식 먹을 궁리를 어제 해가 뉘엿거릴 무렵부터 했다. 그 계획에는 당연히 이 희고 고운 이불에 감겨 푹 자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못 자고 나서 조깅을 하고 아침밥을 먹고 창 밖을 바라보며 책을 읽다가 과로사할 것 같다. 구정근은 터무니 없다는 듯이 막 웃지만 지금 내 상태와 심경에 비추어봤을 때 내 과로사는 타당하다. 정근이는 호텔에서 빈둥거리다가 죽으면 호상이라는 말을 하는데 어이가 없다. 지금은 호텔에서의 불면은 멋있는 거라고 개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내 주검을 발견하고 신고하고 서에 가서 조서를 작성할 때가 돼야 정신차릴 게 분명하다.
잠을 못자니 과격한 말들이 계속 튀어나오고, 이 말 마저도 혀가 꼬인 소리다. 이렇게까지 된 거 참고 참아 내일 저녁쯤 잠 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금 뒷골이 살짝 땡기는 것도 같은데 죽음의 전조일까......? 두렵다....... 하지만 와중에도 구정근은 수면과 근손실의 관계를 유튜브로 알아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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