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에 제주도에 다녀왔다. 정말 오랜만에 중문에 머물렀고, 그것은 아주아주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중문이 아주 멋진 동네이기 때문이다.
나는 5년 전 중문에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고 그저 올레길을 걸었다. 그때도 풍경이 아주 멋지다고는 생각했지만 걸어서 지날 뿐이었기 때문에 크게 느끼진 못했다. 이번에 2박 3일 동안 머물면서는 중문이 감동적으로 멋있는 동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스위트호텔이라는 곳에 묵었다. 이곳은 신라호텔과 롯데호텔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호텔이다. 으리으리한 두 호텔 사이에 귀엽게 자리 잡고 있다. 5성급 호텔이라고는 하는데 묵어보니 '5성급 기준을 갖춘 호텔'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5성급 호텔에 가지고 으레 가지고 있는 통념이 그다지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럴법도 한 게 이곳은 아주 저렴한 호텔이다. 기준 인원이 4명인 객실을 조식을 포함해 1박 20만 원 꼴에 예약할 수 있었다. 양 옆의 호텔이 2인 기준 1박 40만 원은 기본으로 넘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싸다.

이 호텔을 선택한 두 이유 중에 하나는 가격이고, 다른 하나는 테라스다. 내가 예약한 객실의 타입은 패밀리테라스어쩌구였다. 객실의 창문을 열면 테라스와 정원이 있다. 테라스가 사진보다 별로일까봐 아주 걱정했는데 생각보다도 훨씬 좋았다. 나무들과 넓은 잔디가 멋지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나가서 앉아있었다. 아침에는 해를 받으며 수영장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저녁에는 맥주를 마시며 고양이와 놀 수 있었다.


시간대 별로 다른 고양이가 찾아오는 것 같았다. 낮 시간에는 삼식씨가, 밤 시간에는 턱시도씨가 오셨다. 투숙객들에게 이것저것 주었는지 무언가 손으로 건네는 시늉을 하면 가까이 오기도 했다. 물을 잔뜩 떠다 주었지만 수영장 물이라도 먹고 다니는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아침에는 저 삼식씨가 새를 잡으려고 날아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귀여운 손님들 덕에 테라스 만족도가 배는 커졌다.

사실 이 호텔의 장점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신라호텔 옆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라호텔은 역시 대한민국 대표 호텔로서 끝장나는 조경을 자랑한다. 장충동에 있는 서울신라호텔은 그 호텔에 볼일이 있지 않는 이상 방문하기 애매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제주신라호텔은 거대한 자연과 호텔 여럿을 주변에 끼고 있다. 옆 호텔에 묵는데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브런치를 제주신라호텔 뷔페인 더파크뷰에서 먹었다. 입장을 기다리며 호텔을 둘러보았다. 저세상 조경이었다.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제 자리가 어디인지 안다는 듯이 고고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서있었다. 내가 묵는 스위트호텔 제주와 제주신라호텔의 숙박비 차이는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 같았다. 정말 황홀했다. 나무마다 감탄을 쏟아내며 구경했다. 호텔 건물과 시설, 그리고 조경까지 모조리 으리으리하고 아름다웠다.
더파크뷰의 밥까지도 심하게 맛있었다. 5만5천원이라는 밥값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만큼 거의 모든 음식이 마음에 들었다. 너무 충만한 기분이 들어 '생일에 서울 신라호텔 브런치를 다녀올까?'하고 예약 창에 들어갔다. 서울 신라호텔은 브런치도 12만 원 돈이었다. 제주도에서 가보길 잘했다. 신라호텔 칭찬을 잔뜩했지만 이건 분명 스위트호텔의 장점이다.

스위트호텔 제주의 단점을 꼽아보자면 장점 외의 모든 것일 수 있겠다. 거의 모든 시설을 비좁고 낡았다. 직원들의 응대도 5성급이라는 말이 민망하다. 물어도 설명이 충분치 않으며, 적극적으로 니즈를 파악하고자 하는 욕구가 없어 보인다. 가장 야마가 돌아버리는 지점은 조식인데 진짜 민망할 정도로 맛이 없다. 조식당이 높은 층고에 볕도 잘 드는 멋진 공간이길래 식사도 기대를 했다. 그런데 가짓수는 차치하고서라도 즐길 음식이 일절 없다. 베이컨도 볶음밥도 심지어는 커피도 맛이 없는 정도다. 비워진 음식은 채워놓지 않고 텅 빈 그릇 앞에 서있어도 뭐가 얼마큼 필요한지 묻지 않는다. 바쁘게 테이블 매트를 깔고 다니느라 손님들 쪽은 쳐다도 보지 않던 직원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는 자몽이 더 먹고 싶었는데......
신라호텔이 5만5천원이고 스위트호텔이 2만 3천 원이다. 퀄리티가 반의 반 정도라도 할 줄 알고 갔다가 기분이 상했다.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못 마실 정도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그럼에도 다음에도 중문에 간다면 이곳에 무조건 들르도록 하겠다. 룸 온리로 예약하겠다. 느자구없이 불평을 한가득 쏟았지만 투숙할 이유가 훨씬 크다. 밥은 신라호텔 가서 먹으면 그만이다. 계속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세요, 스위트호텔. 제 불평은 잊어주세요. 정말 감사했어요.
기억하셔라! 싸고 멋진 방, 그리고 신라호텔, 그리고 신라호텔, 그리고 신라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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