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국민대 투어를 진행했다.
이번엔 언론정보학부 동기들과 함께 했다. 투어는 '추억 더듬기'가 테마였는데 지난번과 약간 다른 코스로 진행되었다. 나는 본부관에서 뗄 서류가 있어 먼저 학교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지난번 투어 때와는 다르게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가을비와 함께하는 투어는 어떨지 기대하며 복지관으로 내려갔고 카페 나무에서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을 기다렸다.

투어를 함께할 친구들 넷이 차례로 도착했고 카페에서 담소를 잠시 나누었다. 카페 나무에서 떠들던 숱한 날들을 추억하며 웃다가 현호의 신발을 발견했고 급히 정색을 하게 됐다. 감사하게도 이것이 헤어지기 전까지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어주었다. 그가 평소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흡사 웨지힐을 신고 왔을 줄이야. 그는 그다지 굽이 높지 않다는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내려오라고 하자 정말 내려왔다. 아니 뚝- 하고 떨어졌다. 한참을 신발 하나로 웃다가 각자 준비해온 무료 나눔 물건들을 교환하고서 투어를 시작했다.

국제관 엘리베이터를 타고 본부관으로 향했다. 본부관이 리모델링 된 모습은 언제 봐도 학교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기 참 좋았다. 매우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데 2,800만 원 본전 생각에 눈물이 살짝 맺힐 정도였다. 하지만 쾌적하고 조용한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을 때마다 찾은 기억이 있기에 많이는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그다음으로 찾은 곳은 북악관이다. 투명 엘리베이터를 탈 생각에 버선발로 뛰어갔는데 아쉽게도 운행을 하고 있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우리의 추억이 잔뜩 깃든 5층을 구경하기로 했다. 5층은 언론정보학부 전공 수업이 많은 층이기도 하고, 암실이나 멀티미디어 실습실 등 여러 실습실이 있어 학교에서 가장 많이 오간 곳이다. 복도를 걷는 것만으로도 에피소드 2천3백 여개가 줄줄 쏟아져 나왔다. 언제나 그렇듯 만취 썰이 주를 이루었는데 해도 해도 재밌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또 즐거웠다.


북악관 투어를 마치고 민주광장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여기 누웠었지, 저기 누웠었지 하면서 민주광장 눕방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체크셔츠를 맞춰 입은 우리 모습이 꽤나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아주 즐거웠다. 점프샷을 찍었는데 풍성한 내 벨리가 노출돼서 쓸 수 없게 돼버린 것이 원통하다. 사진을 찍은 휴대폰 주인이 현호였는데 포렌식을 해도 복구할 수 없을 때까지 지우고 싶다고 했다.

배가 슬슬 고파왔지만 그대로 끝내기는 아쉬워 도서관 앞까지 걸었다. 불과 몇 주 전에 본 풍경인데도 참 멋졌다. 지난 번과는 다른 초록이 있었고 이제는 노랑이나 빨강이 되어가는 중이기도 했다. 단풍놀이를 하러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도 괜한 핑계를 대고 한 번 더 가야겠다.


투어의 마지막은 풍년포차로 계획됐다. 막 수업을 끝낸 것처럼 도란도란 떠들며 지하세계를 거쳐 풍년포차로 갔다. 풍년포차는 지난 8년 간의 정릉동 에피소드 모음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 넘을 정도로 아주 중요한 장소다. 수업을 마치면 달이 커서, 날이 추워져서, 수업이 재미없어서, 수업 중에 욕할 사람이 생겨서 찾았다. 그곳에서 술을 마시겠다고 온갖 이유들을 만들어낸 적이 많다. 학교를 다니면서 가졌던 비빌 언덕 중에 한 곳이다. 아주 감사하다. 현호도 아주 감사했는지 비타 500 한 박스를 셰프님께 사다 드렸다. 그 모습이 서울에서 성공한 척하는 산골짜기 출신 장남 같아서 재밌었다. 그런데 이제 웨지힐을 신은 장남.

웃고 떠들면서 술도 마시고 지원이는 의자 세 개를 붙여 잠을 자고 하다가 너무 배가 불러서 나왔다. 원래 볼링을 치거나 노래를 부르러 갈 심산이었지만, 버스정류장에서 보깅댄스를 추는 괴랄한 아저씨를 피하려다가 봉국사에 가게 됐다. 봉국사는 무자비한 경사를 자랑하는데 덕분에 죽상을 한 효연을 볼 수 있었다. 법당까지 올라갔다간 효연이에게 나쁜 말을 많이 듣게 될 것 같아서 옆으로 난 북악산 등산로를 조금 오르는 것으로 합의했다. 합의라기 보단 강제 집행이었다. 먼저 올라가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을 마구 하니 모두가 정색을 하고 따라왔다. 올라가는 길에 아주 예쁜 풀꽃 밭이 있어 감탄했는데 그마저도 약이 바짝 오르는지 친구들이 나를 먹금했다.

산책로 중간에 있는 어떤 너른 공간에 멈춰 스트레칭과 요가도 했다. 지원이가 강습을 진행했다. 팔을 높이 드는 동작을 할 때마다 자꾸만 배가 드러나니 친구들이 역하다고 뒤로 돌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힘들어서 죽상을 하면서도 다 따라 하는 친구들이 너무 웃겼다. 빗방울인지 땀방울인지 모르지만 여튼 머리가 옴팡 젖은 채로 내려왔다. 여섯 시가 넘으면 버스가 호박마차로 변하기 때문에 서둘러 헤어졌다. 어떻게 더 놀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소윤이가 몇 달 전부터 밀고 있는 '오늘의 아쉬움이 내일의 뿌듯함이다.'라는 명언 덕이다.
졸라 뿌듯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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