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하루의 면면

적당해서 좋은, 밀레니엄 힐튼 서울

루트팍 2021. 11. 16. 15:21
저녁에 와인을 잔뜩 마시고 백범광장을 산책했다.



11월 13일 토요일, 밀레니엄 힐튼에 두 번째로 방문했다. 오로라자산운용사의 이사 태형, 진욱과 다녀왔다. 분명히 오로라를 보러 갈 작정으로 만든 계모임인데 이러다간 오로라 근처도 못 가게 생겼다. 신라호텔을 시작으로 가끔씩 누리는 호사의 맛에 푹 빠졌다.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호캉스가 정말 확실한 즐거움인 덕에 세 번째, 네 번째 호캉스도 하게 생겼다. 태형이 대충 이렇게 쓰다가 오로라를 보러 갈 땐 알아서 돈을 구해오자고 했는데 나도 그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호캉스파트너스로 이름을 바꿔야 할 듯.



단풍놀이를 테마로 호텔을 예약했다. 하지만 주 초에 내린 비로 꽤 많은 낙엽이 발생했고 아쉽게도 흐드러진 단풍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산은 애초에 단풍이 흐드러지는 곳이 아닌 것 같기도 했고, 호텔 주변에 잔뜩인 초록이 멋지기도 했다. 아쉬운데 와중에 너무 좋았다.

밀레니엄 힐튼 서울의 전체적인 느낌도 이렇다. 모든 게 낡고 오래됐고, 어떤 건 되게 후지기까지 했는데 일단 좋다. 어디든 숙소의 침구와 화장실만 깨끗하다면 만족하고, 웅장한 건축물을 좋아하는 나는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 참 좋다. 오래된 게 오래돼서 편한 것처럼 느껴진다. 정근이와 잠시 메시지를 나누며 이런 소감을 전했는데, 그가 아주 적절하게 요약해주었다. '적당해 보인다'

명동 신세계는 연말 마다 보러 가야지



수영을 아주 잠깐 하고 각자 배쓰밤을 하나씩 풀어 목욕을 마친 후에 신세계백화점에 놀러갔다. 진욱이가 러쉬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다녀왔다. 러쉬는 언제 가도 재밌는 곳이다. 담백하고 친절한 직원분 덕에 산뜻한 쇼핑을 했다. 향을 잔뜩 입고 호텔로 걸으니 신이 잔뜩 났다. 객실에서 조금 쉬다가 라운지에 저녁밥을 먹으러 갔다. 만실인 덕에 3부로 운영되고 메뉴도 저번보다 더 초라해진 것 같지만 애초에 와인을 와구와구 마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즐거웠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폭음을 즐겼다.

카페395에서 먹은 조식. 튀긴 빵과 두유 너무 맛있다



와인을 마시고 남산에 산책도 다녀오니 곤히 잘 수 있었다. 야식을 참고 잠든 덕에 조식을 아주 맛있게 먹을 수도 있었다. 여섯시 반에 일어나 몽롱한데도 이것저것 아주 야무지게 먹었다. 두유에 튀긴 빵을 넣어먹는 메뉴가 특히 맛있었는데 우리 집 1층 마라 집에서 아침 메뉴로 팔아줄 순 없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중국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제비집을 획득한 진욱



아침을 먹고 객실로 돌아와서 태형이는 다시 잠을 청했고 나와 진욱이는 수영 갈 준비를 했다. 여섯시 반에 깨워서 전지훈련 스케줄을 강요하는데도 따라주는 친구들이 참 고마웠다. 전날보다 길게 수영을 하고 돌아와 진욱이와 나도 낮잠을 잤다. 밥도 잔뜩 먹고 몸도 움직이니 꿀잠을 잘 수 있었다. 체크인을 하면서 직원 분께서 체크아웃을 오후 3시까지 미뤄주셔서 맘 놓고 잘 수 있었다. 다음에도 꼭 레이트 체크아웃을 요청해서 낮잠늦잠을 자야겠다.



실컷 자고 일어나 커피를 마시러 라운지를 가려는데 진욱이도 눈을 떴다. 같이 가서 전날과 같은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해가 떠오르는 시간이라 나뭇잎이 더 아름답게 빛났다. 날이 아주 맑지는 않아서 구름도 하늘도 그림 같았다. 늦게 일어난 태형이가 합류해서 같이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가 태형이와 진욱이가 차례로 먼저 떠났다. 허락된 체크아웃 시간을 모조리 누리고 싶던 나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깨작거린 후에 떠났다. 아주 즐겁고 평온한 1박 2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