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우발적 글쓰기

다시 혼자 사니까 좋다

루트팍 2020. 9. 9. 21:23

 

8월 26일부터 다시 자취를 한다.

 

 

2월에 입국하고 나서부터 가족들과 쭉 살고 있었다. 1년 6개월 만에 가족들과 함께 살려다 보니 괴로웠다. 처

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6월쯤에 들어서면서 힘겨워졌다. 언제부턴가 가족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에 과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겁나 짜증을 부렸다. 그래서 모부님께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선언하고 집을 나왔다. 하루라도 빨리 집에서 탈출하고자 불면 호캉스,불캉스를 떠나며 아예 짐을 챙겨 나왔다. 체크아웃 후 곧장 지금 이 자취방에 와서 지낸다. 혼자 살면서 곧장 이렇게 평온해지고 나니까 졸라 머쓱하고 송구스럽다. 아마 나의 출가(가출)가 효도인 것 같아서 왠지 뿌듯하기도.....?

 

 

모부님,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따로 살며 살갑게 지내보아요. 따로 살면 이렇게 서로가 좋잖아요. 사랑합니다~

 

 

 

체감상 100년 읽은 것 같은 시선으로부터(사랑해요, 민애방!), 그리고 내 책상.

 

 

 

6평짜리 작은 방이지만 장점이 아주 많다. 우선, 나 혼자 있다. 그다음으로 나 혼자다. 마지막으로 혼자 있을 수 있다.

 

 

혼자 있으면 내 주변의 소음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 이중창을 닫고 듣고 싶은 음악을 재생하면 정말 그 소리만 들린다. 가끔 옆집선생님이 뭔갈 떨어뜨리실 때 소리가 들리곤 하지만 대부분 안 계신 것 같다. 아니면 잠자코 내가 재생한 음악을 듣고 계실 수도.(SuperM의 호랑이 혹시 어떠셨나요? 제가 230429358회쯤 들려드린 것 같은데요.....) 내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있으면 평온해지고, 해야 할 것들과 하고 싶은 일들이 절로 샘솟는다. 

 

 

엎드려 자다가 일어나면서 몸을 돌렸는데 만난 하늘. 삼라만상에 고마워지는 날씨.

 

 

 

이 방에선 이렇게 지낸다. 우선 일어나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방바닥을 닦고, 얼룩진 곳을 찾아 지운다. 잘 안 지워지는 것 같으면 지울 수 있는 도구를 다이소에서 사 와 지운다. 이틀에 한 번은 빨래를 한다. 귀찮으면 건조기를 돌리고, 안 귀찮거나 섬유유연제 향기가 맡고 싶으면 건조대에 넌다. 수업이 있으면 수업을 듣고, 없는 날엔 늦게까지 자고 앞서 말한 것들을 한다. 유튜브를 보며 밥을 먹는다. 밥은 간단히 해 먹거나 주문해서 먹는다. 하늘이 아름다우면 따릉이를 타거나 창문을 통해 계속 보고 있기도 한다. 자기 전에는 스페인어 공부를 아주 조금 한다. 팟캐스트를 듣거나 책을 읽다가 잠든다.

 

아, 생각해보니까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이 샘솟는다는 건 뻥이다. 마구 샘솟지는 않고 저것들을 할 마음 정도만 피어난다.

 

 

 

우이천에서 따릉이를 타다가 찍은 사진들. 우이천은 자전거 타기가 아주 좋다.

 

 

 

요즘 날씨가 아주 끝장나게 좋았다. 멀리 있는 롯데타워가 아주 선명하게 잘 보였고 하늘이 시간대마다 각기 다른 색으로 빛났다. 온종일 집에 잘 붙어있다가도 심장이 뻐렁쳐 따릉이를 타러 달려 나갔다. 구름을 보며 달리는데 감탄이 터져 나오고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며칠 동안 신이 나서 따릉이를 50킬로도 넘게 탔다. 부천에 살면서 언제나 따릉이가 그리웠는데 다시 타니까 참 좋다. 혼자 사는 동안 아주 많이 타두고 싶다. 이것도 아주 추운 겨울이 오기 전까지일 테니까 아깝지 않도록 차곡차곡 타겠다.

 

 

 

고요함과 따릉이는 참으로 큰 축복이다.

 

 

 

 

뭉게구름이 떠있고 시원한 바람이 불면 책이 읽고 싶어진다. 갑자기 감성 재질됨;;;

 

 

여튼 아직까지 굉장히 만족스럽다. 학기 초의 파이팅도 살아있어서 그런 건가?(저번 학기엔 6주가량 지속됨) 이번엔 전에 이곳에 살 때보다 이것저것 더 잘 갖추어 살고 있어서 그런가? (오늘의집 하루 최소 30분 체류) 여하튼 이런 마음으로 오랫동안 있고 싶다.

 

그리고 이번엔 우리 집에 안 와본 친구들 모두와 꼭 집들이를 하고도 싶다. 선생님들 언제 오시겠어요.....? 다만 집에 의자는 오직 세 개입니다. 와서 알아서 잘 앉으셔요..........

 

 

멋진 공간을 마련해준 우리 모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