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하루의 면면

선선한 여름 밤

루트팍 2021. 8. 5. 13:14


선선한 밤이 계속되고 있다.

덕분에 밤마다 우이천에 가서 따릉이를 타며 시원한 바람을 실컷 맞는 호사를 누린다. 쌩쌩 달리다 보면 풀냄새와 풀벌레 소리가 가득이다. 마스크 속으로 함박웃음을 감추며 듣던 팟캐스트 에피소드가 달리던 도중에 끝났다. 다른 에피소드를 어서 재생해야 할 것 같아서 불안해졌는데 달리는 중이라 그럴 수 없었다. 소리의 공백을 메우려고 속도를 줄이는데 풀벌레 소리가 귀에 서서히 차올랐다. 또다시 즐거워졌다. 이어폰을 꽂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재생하지 않은 채로 한동안 달렸다.

우이천이 끝나는 석계역까지 달리다 보면 다리 위로 버스가 지나는 모습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 하나같이 느린 속도로 다리 위를 지나는데 그게 참 좋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 주변에 사람이라곤 나뿐이고 그래서 다리 위를 느리게 지나는 버스를 보는 것도 나뿐이다. 코에는 풀냄새가 진득하고 귀에는 풀벌레 소리가 가득이다. 차분하고 향기롭고 시원한 장면이자 상태.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고 있는데도 멈춰 서서 느끼는 기분이 든다. 아마도 하루 중 가장 온전한 순간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