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노벨(구 대명리조트) 비발디파크 갔다가 뿔이 단단히 난 사연
지난주 혁이, 소윤이, 진희와 함께 홍천에 다녀왔다. 왜 하필 홍천이냐 하면 소윤이의 '국정원 이모부(별칭임. 실제 직장 국정원 아님)'께서 소윤의 취뽀를 축하하기 위해 방을 예약해주셨다. 너무 감사하게 한 주만에 여행을 또 하게 됐다. 친구들과 맛있는 밥도 먹고 드라이브도 해서 매우 즐거웠다. 숙소인 소노벨 비발디파크의 기억을 약간 들어낸다면 아주 좋은 주말여행이었다.


혁이가 모는 차를 몰고 홍천에 갔다. 가는 길에 별내 이마트에 들러 와인 네 병과 포도 샀다. 나와 진희가 전날 소맥을 너무 많이 마셔서 주종은 와인이 됐다. 나는 산뜻하게 와인을 골랐지만 진희는 꼴도 보기 싫다고 고함을 질렀다. 이마트에서 점심까지 해결하고 소노벨 비발디파크로 갔다.
아주 오랜만에 비가 억수로 오는 날이었다. 아마 신께서 소노벨 비발디파크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려고 하셨던 것 같다. 주여......

불만 1. 얼레벌레 체크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체크인을 하러 갔다. 프론트찡이 예약을 확인하고 곧장 대뜸 온돌방밖에 남지 않았는데 괜찮으시겠냐고 물었다. 침대가 없으리라 상상하지 못한 우리가 어버버 하니 침대를 원하시면 취사가 안 되는 방을 선택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또다시 예상하지 못한 선택지에 어버버 했다. 그러니 대뜸 침대가 있는 방이 있다고 갑작스럽게 안내했다. 원래 우리가 생각하던 방을 배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인데, 어버버를 두 번이나 하고 나니 그 말에도 어버버 했다. 여튼 그 방에 묵기로 결정했다. 그리곤 프론트찡이 체크아웃할 때 19만 얼마를 결제하면 된다고 안내하고 룸키를 받는 것으로 체크인이 마무리됐다.
애초에 선택지가 여러 개면 어떤 특징의 객실인지 정리를 해서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체크인이 몰리던 시간도 아닌데 골라골라아무방이나골라잡숴 하는 식으로 스무고개 같은 혼란스러운 체크인을 진행하는 것이 놀라웠다.

불만 2. 초경량 수건
객실에 도착해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화장실 집착이 심해 믹키형근으로 불리는 나는 곧장 욕실로 향했다. 불을 다 켜고도 어둡고 낡은 브라운 톤의 욕실이었다. 그럴 수 있다고, 이곳은 오래됐으니 당연하다고 마음을 추스르는 와중에 수건이 눈에 띄었다. 작고 얇은 수건 세 장이었다. 혼자 있는 욕실에서 '네?' 소리를 내고 안방에 있는 욕실에도 가보았다. 같은 수건이 두 장 있었다.
친구들에게 호텔에 익숙한 사람인 척을 마구 하며 프런트에 전화를 했다. 당연히 샤워타월을 안 준 줄 알고 가져다 달라고 할 심산이었다. "욕실에 얇은 수건만 세 장, 두 장씩 있는데 혹시 이게 수건의 전부가 맞ㄴ?"까지 말했다. 전화를 받은 한 남성이 "맞아요!"라고 대답했다. 좀 있다가 와인 잔의 존재에 대해 물었을 때도 같았다.

불만 3. PAVV
임정희 누나처럼 '이게 진짜일 리 없어'하면서 거실 소파에 앉았다. TV를 켜서 백색소음으로 마음을 달래려고 했는데 충격에 빠졌다. 삼성이 없애고 만 TV 브랜드 PAVV를 만났기 때문이다. 요즘은 호텔 아니라 모텔에 가도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볼 수 있는 시대인데.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인데. 누가 나 좀 꼬집어 줬으면 해. 꿈이라면 나를 깨워줬음 해. 재용이 형 보고 계세요? 아...... 못 보시는구나......
나의 불만과 무관하게 PAVV는 저곳에 있어야 할 TV가 맞긴 했다. 객실의 곳곳이 PAVV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소노벨(구 대명리조트) 비발디파크)의 상징물이 PAVV라고 해도 무관하다. 와인 오프너는 있지만 와인 잔은 없고, 낡은 시설과 티비가 있고, 너른 주차장을 볼 수 있는 넓은 창도 있고.

불만 4. 대혼란
객실을 둘러보다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커피라도 마시러 지하에 위치한 아케이드에 갔다. 지하 던전에 가자마자 왜 우리가 그런 객실에 묵어야만 했는지 단박에 이해했다. 지하 던전에는 오조오억 명에 이르는 인파가 있었고 보통은 행복한 아이와 괴로운 모부의 조합이었다. 그렇다. 이곳은 모부가 즐거움을 희생하고, 질 좋은 숙박을 포기하고 오로지 아이의 웃음만을 위해 오는 곳이었다. 아이 외에는 모두가, 심지어는 리조트 측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Cafe&Bakery의 직원들까지도 불행해 보였다. 넘치는 인파 속에서 어린이들을 통솔하는 자들의 예민함이 상점 직원들에게도 뻗친 게 아닐까 추측했다. 그래도 어린이들이 웃을 수 있다면 됐다. 나는 뭐 유튜브에서 소풍족이나 이지다를 보면서 웃으면 되니까, 그래 너흰 웃거라.
대혼란과 행복과 불행 사이 어딘가를 부유하는 신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바로 여기, 소노벨(구 대명리조트) 비발디파크로 오세요!

혼란을 이기지 못하고 밥이며 커피며 케익이며 모조리 사들고 객실에 가서 먹기로 했다. 바리바리 싸들고 객실에 돌아와서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와중에 휘어버린 와인 따개 때문에 부상을 입고 더 혼란에 빠졌다.
재즈를 크게 틀어놓고 마음을 추스르며 사온 것들을 먹고 마셨다. 술이 모자랐지만 아쉬운 대로 잠들었다. 술을 더 살 궁리를 할 때 소윤이가 아쉬울 때 잠들어야 다음 날에 후회가 없다는 취지의 명언을 날렸는데 까먹었다. 분명 '존나 멋있어....'하면서 감탄했는데 다음 날 들깨수제비로 해장을 할 때 알콜과 함께 휘발한 것 같다.

소노벨에 욕을 한 바가지 했지만 만족한 점이 없지는 않다. 내가 꼽는 장점은 바로 뭉뚝한 칼이다. 치즈를 자를 때 사용한 칼인데 다칠 위험이 없으면서도 정확하게 자를 수 있어 아주 좋았다. 집에 가면 꼭 이런 칼을 사야지 하고 사진도 찍어뒀다. 버터나 치즈처럼 섬유질이 없는 것들을 자르기에 최적이다. 이것만 들여놓으면 내 집의 이름이 비발디파크푸르지오시티가 될 것 같다. 꼭 사야지!
일전에 대명리조트는 이름이며 로고타입이며 새로운 것으로 갈아치우며 이미지 쇄신을 시도힌 바가 있다. 바라건대 시설과 서비스 쇄신이나 하셔라.

분명히 강조하지만 나는 분명 즐거운 주말여행을 했다. 비발디파크의 기억만 소거한다면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 그리고 즐거운 대화가 남는 즐거운 주말. 소윤의 국정원 이모부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소윤의 취뽀를 축하하고, 오며 가며 홀로 운전을 도맡은 혁에게 고맙고, 나와 이틀 내내 술 마시며 떠든 진희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