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하루의 면면

까치까치 설날은 체험 삶의 현장

루트팍 2021. 2. 14. 00:44

 

  얼마 전에 부천에 다녀왔다. 하지만 설은 대목이기에 다시금 찾았다.

  엄마선배의 집까지는 두 시간이 걸려서 큰 마음을 먹고 출발했다. 아이패드를 산 뒤로는 먼 여정을 떠날 때 넷플릭스 오프라인 저장을 이용하곤 한다. 휴대폰으로는 영상을 보면 답답해서 이전에는 항상 팟캐스트를 들었다. 하지만 이젠 아이패드가 있기 때문에 넷플릭스며 유튜브며 팟캐스트며 아무 매체나 즐길 수 있다. 이번 여정에는 '카모메 식당'을 감상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다. 모든 캐릭터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계속 새어 나왔다. 

 

보고서 바로 감탄이 튀어나왔던 장면. 좋다.

 

  오자마자 엄마선배, 아빠선배와 연휴 동안 먹을 음식을 장만하러 현대백화점으로 향했다. 현대백화점이 휴점 하여 이마트에서 음식을 장만했다. 아주 혼잡한 그곳에서 설과는 무관한 음식들을 잔뜩 사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반찬가게에 들러 전도 사고 도라지도 사고 고사리도 샀다. 집으로 돌아와 차례차례 먹어치웠다. 모스카토와 생블루베리를 가장 먼저 먹었고, 해물탕과 포도도 먹었다.

  해물탕을 먹으면서 소주칵테일을 해먹었는데, 이것 때문에 아주 까무러칠 일이 생겼다. 소주칵테일은 소주와 진저에일과 라임을 섞어서 만들었다. 아니 라임을 섞어먹었다고 생각했다. 이마트에서 생라임을 발견하고 너무나 반가워서 세 개나 샀다. 해물탕이 끓는 동안 라임을(라임이라고 생각한 것을) 썰면서 '해물이랑 라임 같이 있으니까 태국 온 것 같다.'며 나의 (태국) 여행 피해자 모임원인 엄마에게 깐족댔다. 맛있게 한 잔 다 비우고 나니 라임을(라임이라고 생각한 것을) 그냥 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과육을 씹어먹었다.

  레몬이었다. 초록색 레몬이었다. 약 7시간 동안 깜빡 속았다. 눈물을 살짝 흘렸지만 그래도 자그마한 에피소드가 생겨서 좋다. 원효대사해골라임 사건. 일단 허무하긴 해서 중앙공원을 두 바꾸 돌았다. 돌다가 귀여운 BUCHEON 사인을 발견해서 친구들에게 보내줬더니 부채 ON이라고 읽어서 눈물을 한 번 더 흘렸다.

부천? 부채ON?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친구들이 하는 카페에 놀러갔다. 연휴에 카페가 그렇게 바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다들 애프터눈 산적 세트, 애프터눈 갈비찜 세트에 질렸는지 커피와 베이커리를 즐기러 온 것 같았다. 놀 틈은 없었고 바쁘게 소일거리를 도왔다. 몇 년 만에 노동을 한 거라 아주 즐거웠다. 체험 삶의 현장에 출연한 탑스타처럼 일일 카페 알바가 되어 즐겁게 일했다. 시원한 날이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일했다.

  하얀 회전목마를 타고 올라가서 금일봉을 넣는 상상을 아주 잠깐 했으나 세 시간 만에 도망나왔다. 체감 상 5시간이었는데 세 시간 남짓이었다. 눈물이 약간 맺혔지만 금일봉으로 휘낭시에와 와플과 스콘과 얼그레이 크림을 받아 닦을 수 있었다. 이 일을 매일 하는 친구들이 존경스러웠다. 나는 서서히 웃음을 잃어가는데 그들은 유지하는 것이 놀라웠다.

  문득 내가 굳어가는 모습이 그들을 웃음 짓게 한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지금 집에 돌아와 클럽하우스 몇 시간 때리니 금방 몸이 회복되고, 기억도 미화 되는 걸 보니 다음에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약 반년만 더 쉬면 될 것 같다.

 

  부개역 <고서커피> 꼭 가세요. 맛있는 빵과 커피가 있어요. 인천, 부천 사는데 고서커피 안 간다? 불법입니다. 대신 제 친구들 힘드니까 안 바쁜 시간에 찾아가주셨으면 해요. 건방 떨어서 죄송해요. 그냥 많이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