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에 다녀왔다
부천 집에 다녀왔다.
누나가 간만에 부천으로 행차한다기에 집으로 향했다. 아이패드를 사준 것이 너무나 감사해 가서 절을 올리려는 심산이었으나, 수유에서 부천까지 가는 길이 멀고 험해 절을 올릴 기운을 잃었다. 서울역을 지날 무렵부터 지쳐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하니 내게 남은 건 허기뿐이었다.
What a 배은망덕

너무 배가 고파 나는자연인이다말벌아저씨처럼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데 집이 신기루 같았다. 저 멀리 보이는데 너무 먼 거 같고 평소보다 내 걸음이 두 배는 느려진 것 같다. 오늘과 비슷하게 배고픈 데 밥집이 멀 때 느끼는 감정이다. 상대성 이론을 이렇게 체감한다. (문과라고 욕하지 마십쇼. 다들 어수룩한 과학 상식 수 억 개씩은 다 가지고 계시잖아요 ㅡㅡ)
가는 길에 있는 상가마다 들러 먹을 걸 사서 집에 갔다. 비행기를 타고 온 누이도, 주말이라 출근을 하지 않은 엄마 아빠도 다 집에 있었다. 거의 두 달 만에 집에 방문했는데 너무 익숙해서 놀랐다. 보통은 한 달 주기로 부천 집에 들른다. 그리고 10년 간 거주한 그 집이 생경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오랜만에, 저 멀리 사는 누이가 아주 오랜만에 제 방에 있는데도 익숙하다고 느꼈다. 나의 브레인찡이 우리 가족이 네 명인 상태를 기본값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가 우리 모두 집에 와서 약간 신나 하는 게 느껴지니 그제야 오랜만에 집에 찾은 게 맞구나 싶었다.


집에 간다고 별 거 하는 건 없고 밥을 먹고 내 방에 누워있는다. 보통 아빠는 안방, 누나와 나는 각자의 방, 엄마는 거실에서 생활했고 오랜만에 봐도 그렇게 한다. 목이 마르거나 허기가 진다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각자 알아서 주방으로 가서 사부작사부작 한 다음에, 다시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보통 함께 하는 거라곤 밥과 과일을 함께 먹는 게 전부지만, 가끔 이게 하고 싶어서 집에 간다.
엄마 아빠에게는 '엄마아빠 얼굴이 보고 싶어서' 왔다고 조금은 다르게 말하곤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데다 엄빠가 듣고서 괜히 좋아하니 굳이 정확하게 설명하진 않는다. 어쨌든 간혹 집을 찾으면 매일 집에 있는 것과는 다르게 가족 모두가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게 아주 중요하다.


산해진미를 이것저것 주워 먹으니 배가 너무 불러 걸으러 나갔다. 보통은 중앙공원에 가 몇 바퀴 걷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제처럼 호수공원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어제는 호수공원까지를 왕복했다. 시청에서부터 바뀐 상점들이 많아 열심히 구경을 하며 길주로를 쭈욱 걸었다. 이것저것 재밌어하며 걸었는데 정작 호수공원에 가서는 실망했다. 부천 호수공원은 부천에서 몇 안 되는 시야가 트이는 곳인데 이것저것 공사하는 부분이 많아 썩 시야가 시원하지 못했다. 그래도 보통 공원은 이런 공사를 거치고 나면 훨씬 더 멋진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에 기대도 된다. 다다음 부천 방문쯤이면 완성이 될 것 같다.
호수공원도 한 바퀴 돌고, 오는 길에 중앙공원도 돌고, 길주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현대백화점 유플렉스에 다녀왔다.
며칠 전 누나로부터 유플렉스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마침 어제부터 누나가 타코가 땡긴다고 했기에 온더보더에 식사를 할 겸해서 그곳을 찾았다. 이곳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곳이 문을 연 이후로 로담코 프라자, 디몰 등 여러 이름을 거쳤지만 큰 변화를 보여준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문을 열자마자 곧 거대한 면적의 COS 매장이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고, 에스컬레이터며 천장이며 휘황찬란하게 빤딱빤딱 빛나고 있었다.
오바를 살짝 더해 시암 센터, 시암 파라곤이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많이 더했다ㅎ 최근에 친구들과 방콕 여행을 복기하는 시간을 가져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방콕에 놀러 간 늭낌으로 멕시칸 음식을(?) 먹은 후에 누이는 외투 하나를, 나는 바지 하나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조금 누워있으니 금세 저녁이 됐고 누나와 함께 겸사겸사 밖으로 다시 나왔다.
엄마가 퇴근하고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집 앞에 있는 칼국수집에서 칼국수를 사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전까지 한 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누나는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공부를, 나는 블론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독서를 했다. 현지누나가 얼마 전 본인의 생일파티를 하는데 나에게 선물해준 책을 읽었다. 한정현 작가의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 첫 번째 소설인 '괴수 아키코'를 읽었다. 애틋한 마음이 소설 속 관계나 사물이나 사람 구석구석에 묻어있어 괜히 슬펐다. 잠깐 밥 먹기 전에 읽으려던 책인데 기대보다 큰 울림이 있었다. 책을 선물 받은 것부터 좋았는데 눈물이 맺히는 책이기까지 해서 너무 감사했다. 늦었지만 현지누나에게 제대로 된 생일선물로 앙갚음해야겠다.
우리 가족 중 세 사람은 밥을 먹고 예쁜 모양을 한 딸기까지 나눠먹고는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나는 어제와는 달리 다시 미아동 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배추김치, 곱창김, 파프리카, 꿀, 치약, 울샴푸, 영양제 등을 바리바리 챙겨 왔다. 엄마 아빠 얼굴이 보고 싶어 집에 간다는 말이 아주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는 걸 엄마 아빠도 이쯤 되면 눈치챘을 것 같다. 그래도 서로 얼굴을 보고 조금은 신이 났으니 됐다. 나는 거기에 갖가지 현물 등을 챙겼으니 보다 더 신이 났다.
나의 고향은 경기도 부천시다. 거기엔 엄마아빠의 집이 있고 거기에 다녀온 참이다.
